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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일보

[ISSUEⅠ]엔저 직격탄 ‘철강·기계·석유 산업’

[ISSUEⅠ]엔저 직격탄 ‘철강·기계·석유 산업’
올 하반기 ‘영향권’ 대책 마련 시급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엔저 현상은 올 상반기 우리나라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된 일본 기업들이 하반기부터 수출 단가를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수출이 위축될 전망이다. 특히 철강, 기계, 석유 업종이 엔저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만큼 엔저 장기화에 대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소가 발표한 ‘엔저 수출 영향 하반기에 확대’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이후 빠르게 진행돼 온 엔화 약세가 상반기에는 우리나라 수출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하반기 이후 세계 주요국 중 우리나라에 다소 충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향후 엔화의 등락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한일 양국 간의 수출 경합도는 지난해 56.8%로 일본과 교역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그동안 원/엔 환율 변화와 우리나라의 수출은 상당히 유사한 움직임을 보여 왔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 한국 수출 단가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원/엔 환율 변화에 따른 양국의 수출 변화는 그동안 3~4개월의 시차를 두고 나타났다. 통화 가치가 하락해도 생산자들이 거래선을 바꾸거나 소비 패턴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제로 수출 물량이 조정되기까지는 ‘J커브 효과’라고 불리는 시차가 발생한다.

지난해 10월부터 엔화 가치가 급락했던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초부터는 엔저의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야 했으나 엔화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것에 비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올 상반기까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우선 엔화 절하 폭에 비해 최근 일본 수출 회복세는 미미한 편으로 지난해 9월보다 현재 엔화는 달러 대비 25%, 원화 대비 18% 가량 하락한 상황이지만 달러 기준 일본 수출은 오히려 2.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 점유율도 지난해 12월 이후 소폭 증가했으나 여전히 엔저가 시작되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물량을 기준으로 한 수출 역시 회복 추세로 돌아섰지만 지난해 평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엔저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파급 효과도 아직까지 뚜렷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1월부터 5월까지 수출 누적 수치를 살펴보면 약 0.9% 성장한 것에 그치고 있으나 엔저보다는 세계 경기 부진에 따른 영향이 더욱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출 물량 역시 올해 들어 8.3% 증가해 물량 지수가 8% 감소한 일본에 비해 상황이 나은 것으로 조사됐다.
 

엔저에 따른 수출 단가 하락 느리게 반영
과거와 달리 일본 기업들은 급격하게 진행된 엔저에도 불구하고 달러 표시 수출 단가를 바로 조정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의 엔저 시기에는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즉각적으로 일본 제품들의 달러 표시 단가가 하락했으나 이번 엔저 시기에는 아베노믹스 출범 이후 5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본격적으로 단가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가 시작되기 이전인 작년 9월 대비 올해 5월에 엔/달러 환율은 28.6% 상승했으나 달러표시 단가는 8.7% 하락한 데 그쳐 결과적으로 엔화표시 수출 가격이 17.3% 상승했다. 이는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의 엔저 시기에는 엔저 시작 시점에서 매출액 영업 이익률이 90년대 평균을 넘어서는 3.9%로 양호한 수준이었다. 때문에 환율 변화를 수출 가격에 빠르게 전가할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번 엔저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3분기 일본 제조 기업들의 영업 이익률은 2.6%로 금융위기 기간을 제외하면 90년 대 최저 수준이었다. 일본 수출 기업들은 엔화 절하의 효과를 수출 가격에 반영하기보다는 상당 부분 내부적으로 흡수함으로써 기업 실적 회복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엔저가 향후 지속될 지 여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이 달러 표시 수출 가격을 즉각적으로 인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반기 엔저 영향 확대
최근 엔저 현상이 다소 둔화되고 있고 엔저 효과도 상반기에는 그리 크지 않아 이에 대한 관심이 축소된 상황이나 엔저 효과는 하반기에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기업들은 엔저로 지난해 말부터 수익성이 빠르게 개선돼 수출 가격을 인하할 여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엔화 표시 수출 가격이 상승하면서 일본 제조기업 매출액 영업 이익률은 지난해 2.8%에서 올해 1분기 3.7%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0년 이후 20년간 장기 평균 수준이다.

실제로 채산성이 개선된 일본 기업들이 달러 표시 수출 단가를 올해 2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인하하기 시작했다. 일본 달러 표시 수출 단가는 엔저 시작 이후 5개월간 전년 동기비로 1.6% 하락하는데 그쳤으나 4월과 5월에는 8% 이상 단가가 하락했다.

 

한국과 일본의 상대적 수출 단가와 수출 금액 비중의 시차 상 관계수를 분석해보면 수출 단가가 변화한 뒤 5개월 이후에 수출 금액에 대한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수출 단가가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엔저의 영향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철강, 기계, 석유화학 업종 타격 커
업종별로는 철강, 기계, 석유화학 등의 장치 산업이 엔저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예상된다. 원/엔 환율이 10% 하락할 때 철강 업종의 경우 6% 가량, 석유화학과 기계 업종의 경우 2% 가량 타격을 입는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엔저가 시작된 이후 일본에서 석유화학, 철강, 기계 산업 수출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어 이미 엔저 효과가 일본 수출에 반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2000년대 후반 엔고가 지속되면서 많은 일본 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했으나 석유화학, 철강 등 장치 산업의 경우 산업 특성상 대규모 생산 시설을 이전하기 어려워 해외 생산 비중이 낮았다.

일본 내 생산 비중이 높다 보니 엔화가치의 하락이 가격에 반영될 여지가 커 엔저의 수혜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철강, 석유화학 품목은 일본 수출 단가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 교역의 2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다.

철강의 경우 중국의 철강재 단가 인하로 공급 경쟁이 심해져 지난해 3분기까지 한국과 일본 모두 단가를 비슷한 수준으로 인하했다. 그러나 엔저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은 올해 1분기 17% 이상 공격적으로 단가를 인하했고 이에 따라 한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1분기 24%에서 올해 1분기 20%로 크게 감소했다. 석유화학 역시 일본 제품의 수출 단가가 9.7% 가량 인하되면서 한국 시장 점유율이 1% 가량 떨어졌다.

기계의 경우 아직까지 점유율 변화는 미미하지만 향후 엔저에 따른 충격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계류 등 자본재는 제품 가격이 하락해도 즉각적으로 다른 제품으로 대체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아직까지 엔저의 타격이 본격화 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공작기계를 중심으로 일본 제품과 경합도가 높기 때문에 신규 수요를 일본 기업에 빼앗길 여지가 크며 특히 우리나라의 기계 산업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서 채산성 악화에 더욱 취약할 것으로 우려된다.

 

 

자동차 수출 엔저 효과 향후 확대 전망
자동차 산업의 경우도 엔저 효과가 아직까지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고 있다. 엔저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출이 한국에 비해 물량 기준 감소폭은 오히려 큰 것으로 조사됐다. 1분기 한국 자동차 수출이 물량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 감소한 77만대를 기록했으나 일본 수출은 같은 기간 11% 감소한 225만대에 그쳤다. 그동안 지속된 엔고로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해외 생산 비중을 3분의 2까지 높이고 국내 생산은 줄여왔다.

특히 2009년 이후 엔고 시기 중 해외 생산이 급격히 증가한 바 있다. 이는 자동차 부문에서 엔저의 수혜를 축소시키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의 수출 규모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의 3배 정도로 크기 때문에 엔저로 인한 파급 효과는 상당할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우리나라 자동차는 이미지나 가격대가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엔저에 따른 피해는 경쟁국 중 한국이 가장 클 전망이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의 수출 단가를 떨어뜨리고 있다.

엔저가 시작된 지난해 10월부터 올 1분기까지 일본 자동차 수출 단가가 2.3% 가량 감소하는데 그쳤으나 4월 일본 자동차 수출 단가가 10% 가량 급락하면서 수출 물량도 증가 추세로 돌아서고 있다.

엔저로 생산 단가가 하락하자 일본 자동차 업계는 국내 생산을 늘리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도요타의 경우 올해 4부터 9월까지 일본 생산 물량을 20만대 가량 늘리기로 했으며 닛산 자동차 역시 10월 이후 미국으로 생산을 이관하려던 차종을 일본에서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엔저로 일본 생산이 증가하면 현재 제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에 대한 타격이 장기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전기·전자 업종 타격은 제한적
반도체, LCD, 주요 전자 내구재 부문에서 엔저로 인한 단기적인 충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지속된 엔고 시기 중 일본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은 크게 위축됐다. 현재 엔화 가치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자 업체들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반도체, LCD, 전화기(무선통신기기 포함) 품목의 한국 수출 증가율은 각각 8.2%, 6.8%, 28.3%를 기록했으나 일본 수출 증가율은 각각 -14%, -10%, -10.9% 로 오히려 수출이 감소했다.

일본 전자 업체들은 90년대 후반 반도체 주도권을 한국에 넘겨줬고 2000년대 부터는 컴퓨터, TV, 스마트폰 등 최종재 생산도 급격히 위축됐다. 2004부터 2007년의 엔저 시기에도 우리나라 수출 업체들은 과감한 투자로 LCD 등 주요 전자 품목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을 큰 폭으로 높여 엔저 타격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00년 대 후반 엔고 기간 중 일본 전자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가속화된 바 있다. 이로 인해 일본 전자 업체들은 현재 엔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전자 기업들이 세계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신규 투자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존 생산 제품에서 대규모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일본 LCD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 탈환을 위해 진행한 대규모 투자가 실패로 돌아간 사례도 있다.

반면 엔저가 지속될 경우 새로운 제품 영역을 중심으로 일본 기업들이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다. 일본 업체들은 LCD에서 뒤쳐진 경쟁력을 회복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고 대신 OLED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밖에 스마트 가전, 전력 인프라 등 새로운 성장 동력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어 향후 우리나라의 수출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엔저 장기화 되면 타격 커질 것
세계 경제가 여전히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엔 환율이 추가적으로 하락한다면 올해 우리 수출은 제자리 걸음을 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0년간 원/엔 환율이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 보면 원/엔 환율 10% 하락 시 수출은 1.4% 위축됐다. 향후 원/엔 환율이 1000원까지 하락할 경우 수출을 약 4.5% 정도, 900원까지 하락하면 6% 정도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되는 부분은 엔저의 장기화다. 아베노믹스로 인한 양적 완화 정책 효과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령화, 엔캐리 트레이드(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의 통화나 자산 등에 투자해 이익을 얻는 금융 기법) 재개 가능성 등 구조적 요인이 엔화 절하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엔저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과거 일본이 엔고로 인해 시장을 우리나라 등 경쟁국에 내주면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크게 낮아졌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우리가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소 이지선 선임연구원은 “엔저가 장기화될 경우 정책 당국과 기업들은 우리 경제에 대한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들이 마련돼야 한다”며 “자본 유출입에 대한 규제 강화와 함께 경상수지 흑자가 과도하게 누적되지 않도록 함으로써 원화 강세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수출 기업들의 비용 절감을 위한 제조 공정 개선, 환율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독창적인 기술 개발 등을 더욱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재선 기자 inspi06@kid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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